마틴 루터 킹 암살 제임스 어레이 단독 범행?

1968년 6월 8일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캐나다 여권을 가진 40대 남성이 체포되었습니다.캐나다 경찰의 지명 수배자의 여권이었습니다. 가방 안에는 위조 여권이 더 있었는데, 바로 그가 두 달 전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암살한 제임스 어레이(James Earl Ray)였습니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로 강제 송환된 그는 이듬해 3월 양형거래를 통해 범행 일체를 인정해 9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전기 의자의 사형을 면하는 것이었습니다.법정 공방도, 범행에 대한 모든 조사도 그렇게 끝났습니다.하지만 FBI를 비롯한 백인 권력자들을 가장 괴롭혀온 흑인 해방운동가가 단순한 인종주의자 백인 루저에게 암살당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진실 혹은 의혹이 그렇게 덮일 리가 없었습니다.

범인 체포 전부터 FBI 배후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범인은 절도 및 무장 강도 전과자로 탈옥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어요.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저격소총을 인근 빌딩 앞에 버린 점과 검문이 시작되기 전 도시를 벗어나 시카고와 LA, 멕시코, 캐나다를 거쳐 영국으로 종횡무진 도피해 온 점이었습니다.

도피 자금의 출처도 불분명했지만 수배자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의심받을 만했습니다. 한마디로 ‘배후’가 일정 시점 후에 그가 체포되기를 원했다는 것이었습니다.제임스 레이도 판결 직후 자백을 번복했습니다. 변호사가 테네시주 사형제 폐지 사실을 알리지 않고 양형 거래를 종용했다는 겁니다. 그는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라울(Raul)’이라는 자가 부추겼으며 자신은 방아쇠도 당기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당국은 그의 주장을 묵살했지만 킹 목사의 유족과 동료는 범인의 진술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의회와 검찰 등의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FBI나 마피아의 배후 의혹은 결국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9년 유족이 제기한 100달러 민사소송에서 배심원단은 ‘멤피스 시 당국과 주-연방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마틴 킹 목사의 업적은 비폭력 시위를 통해 흑인 인권행사 보장과 인종적 편견 종식을 요구하며 민권운동에 앞장선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흑인 중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1964년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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